정지영 커피로스터즈

커피를 넘어 골목을 통해 로컬 브랜드를 만나다

 

한 잔의 커피로 지역을 말하다
:: 행궁동에서 만난 정지영 커피로스터스

수원 행궁동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도시가 가진 속도가 조용히 늦춰진다는 걸 느낀다. 오래된 기와와 성곽이 말없는 대화를 건네는가 하면, 정성스레 다듬어진 담장과 공방, 카페들은 현대의 감각으로 시간을 직조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흰 타일 외벽의 한 건물.  그곳은 바로 정지영 커피로스터스다.

브랜드가 특별한 건, 단지 커피가 맛있어서가 아니다. 행궁동이라는 지역과 아주 유기적으로 연결된 채, 이 마을의 정체성과 흐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WE ARE SUWONER”라는 선언

정지영 커피로스터스 본점 건물의 유리창엔 큼지막하게 이렇게 적혀 있다.
WE ARE SUWONER. 수원의 이름을 딴 사람이 만든 브랜드가, 이 도시 한가운데서 지역과 커피, 브랜드와 마을의 경계를 허물며 자리를 잡았다.

외관은 흰 타일로 단정히 마감되어 있지만, 내부는 콘크리트의 거친 결이 그대로 살아 있다.
여백과 재료, 구조의 솔직함이 커피가 가진 ‘본질의 힘’을 말해주는 듯하다. 5층짜리 건물 곳곳에는 로스팅룸, 아카데미, 루프탑, 스토어까지 다양하게 채워져 있는데, 이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 스튜디오’에 가깝다.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기획하고, 스타일을 제안하며, 로컬의 무드를 디자인하는 공간.

 

로컬, 로스팅, 리듬

1층 로스팅룸을 들여다보면 거대한 로스터가 돌아가며 생두를 볶는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과학처럼 정제된 커피 작업이 펼쳐진다. ‘정지영’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사람 이름이 아니라 커피의 기준이 되는 ‘기준값’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곳의 커피는 깊고 단단하다.
단지 원두의 퀄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커피가 도달한 맛의 지점에는 이 마을에서 만들어진 리듬이 있다.
천천히 내려오는 골목의 분위기, 골목을 유유히 걷는 사람들, 그리고 행궁에서부터 내려온 이야기들이 커피 향에 녹아든다.

 

골목과 함께하는 커피, 커피로 성장한 로컬 브랜드

정지영 커피로스터스는 단지 성공적인 개인 브랜드가 아니다.
행궁동이 ‘도심 속 전통 마을’이라는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인 감각과 로컬리티를 결합한 도시 문화의 실험실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이 브랜드의 기여가 크다.

정지영 커피는 젊은 창작자들과 함께 협업하고, 자체 굿즈를 생산하며, 로스팅 아카데미를 통해 커피 생태계를 확장해왔다.
커피 굿즈와 드립백, 베이커리, 수원의 프로야구팀 ‘KT위즈’와 협업한 유니폼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채워져 있다. 커피 한 잔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가 도시와 연결되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단지 커피 맛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정지영 커피가 제안하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수원이라는 도시의 한 정서를 ‘체험’하러 온다.

 

행궁동이라는 무대 위, 브랜드라는 배우

화성행궁에서 걸어 내려오는 길, 전통과 유산을 지나 도착하는 이곳은 마치 현대 수원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로컬’이라는 단어가 때때로 피상적으로 소비되곤 하는 시대에, 정지영 커피로스터스는 그 의미를 꽤나 진지하게 붙잡고 있다.

정지영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의 브랜드는 마치 이 지역의 기후, 기질, 기세를 커피 한 잔으로 압축한 듯하다. 오랜 시간 지역에 뿌리내리고, 마을과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고, 공간과 맛이 이어지는 구조. 그리고 그 모든 결이 커피의 향으로 피어오른다.

 

마무리하며

:: 커피로 연결되는 도시의 감각


행궁동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할 무렵, 루프탑에 올라가 바라본 골목과 담장, 기와지붕 너머의 도시는 꽤나 다정했다. 그리고 그 풍경 한가운데 커피가 있다.

정지영 커피로스터스는 단지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이 도시를 하나의 리듬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감각의 앵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