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아 대표, 드로잉판

드로잉판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드로잉판은 마을의 골목과 풍경, 동물 등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이를 다양한 소품으로 제작하는 브랜드예요. 원래는 개인적으로 수원의 화성, 동네 구석구석의 집들, 마을에 사는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아이패드로 매일 그려왔는데요. 지금은 이 그림들을 엽서나 노트, 패브릭 포스터 같은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드로잉판’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 사업자 등록이 필요해서 이름을 급히 지었어요. 그림을 좋아하니 ‘드로잉’을 넣고, 무언가 펼쳐보자는 의미로 ‘판’을 더했는데요. 요리하는 프라이팬처럼 그림으로 무언가를 조리하듯 만들고, 다양한 잉크들이 섞이는 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있어요.

 

매장은 혼자 운영하시나요?

아니요. 현재 5명의 작가가 함께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요. 매듭, 규방, 뜨개, 비즈, 그리고 제 그림까지 각자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집에서 작업하던 작가들이 모여서 함께 하고 있어요. 각자 루틴대로 움직이고 자기 작업을 하다 보니, 복잡할 것 같았던 5명이 의외로 조화롭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같이 운영하고 있는 작가님들과 의견이 달랐던 적은 없나요?

사실 중간에 위기가 있긴 했어요. 장사를 하다 보면 매출이 신경 쓰이니까, 누군가가 싸게 떼어온 상품을 팔자고 하기도 했었죠. 그런데 저는 그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싸게 팔더라도 우리가 직접 만든 작품 중에 잘 안 팔리는 걸 싸게 파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외부 물건을 들이지 말자고 의견을 드렸고, 작가들도 그 이야기에 동의해주셨어요. 앞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매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일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 정신을 지키면서 사업을 하는 게 쉽진 않지만, 앞으로도 직접 만드는 작품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업을 운영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림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낙서를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학원을 다니진 못했고요. 또 산업디자인과를 전공했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4년 전부터였어요. 아이패드로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요. 욕을 먹든 말든 계속해서 올렸고, 그게 어느새 쌓이면서 지금의 일을 시작하는 밑걸음이 되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원래는 의뢰받아 그림을 그리는 정도였어요. 공공기관의 행사 포스터나 웹자보 같은 것들이요. 그러다 이 동네의 자주 열리는 마켓에서 만난 사람들이 함께 가게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때마침 장소도 생겨서 시작해볼 수 있었어요. 5명이 함께 운영하면서, 처음엔 걱정도 있었지만 다 자기의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라 서로 작업에 집중하면서 잘 맞춰가고 있어요.

우연히 비 오는 날 장미가 예쁘게 핀 대문 그림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그 그림을 사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고, 어떤 카페 사장님은 그림을 산 날 하루 매출 최고를 찍었다고 했고요. 그 장미 그림이 마치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징처럼 퍼졌고, 물건을 만들어도 그 그림만 계속 나가는데요. 그렇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가 그린 그림을 제품으로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 같아요.

 

드로잉판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고, 이 골목 골목을 잘 알아요. 또 저는 진짜 감동을 받았을 때만 진심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거든요. 노을이 예쁘다거나, 오래 본 풍경이 어느 날 다르게 보인다거나 그런 순간들이요. 그래서 그림에는 감정이 담기고, 그런 감정이 보는 사람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골목의 모습을 꾸준히 관찰하고,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을 담아 그리고 있어요.

 

대표님께 행궁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행궁동에서 오래 살았고, 지금도 여기서 계속 살고 있어요. 어릴 때는 이 동네가 별로라는 생각도 했지만, 도시재생이나 생태교통 운동을 거치면서 동네가 변했고, 그 과정에서 동네 사람들과 더 많이 연결되었죠. 이제는 동네 사람들과 모두 인사할 정도로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외부에서는 행궁동을 ‘핫플레이스’라고 하지만, 저에게는 그저 사람이 사는 동네예요. 앞으로도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고요.

 

2024년 마무리와 내년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올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기적처럼 좋은 결과도 있었어요. 행궁동이 글로컬 상권 사업에 선정되면서 여러 혜택을 받아볼 수 있었고, 주변 작가들에게도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어요. 내년에는 드로잉판의 제품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고 사업비도 걷어서 1년 동안 열심히 운영해 볼 계획이에요.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그때 판단하자고요.(웃음)

또 이전에는 단순하게 내가 좋아하는 걸 그렸다면, 앞으로는 마을 전체를 그려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마을 지도도 만들고, 가게나 거리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그걸 기반으로 진짜 ‘행궁동 작가’다운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