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두 분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김민호: 안녕하세요, 스테이 이고 운영하고 있는 김민호입니다. 고향은 평택인데 아는 형 따라서 15년 전쯤 행궁동에 처음 들어왔어요. 대학 졸업 후 여행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고향인 평택은 그런 사업을 하기엔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마침 당시 같이 창업하던 형의 할아버지 댁이 행궁동에 있었어요. 지금은 행궁동이 굉장히 핫한 동네지만, 그때는 좀 낙후된 주거지역이었거든요. 임대료도 저렴하고 수원 화성이라는 관광자원도 있으니까 뭔가 시작해 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게스트하우스 겸 카페인 ‘공존공간 89-2’를 함께 열었어요. 이후에 이 동네에서 살면서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식당도 한 4~5년 정도 같이 운영했어요. 그리고 작년부터는 ‘스테이 이고’를 운영하고 있고요.
박상연: 안녕하세요, 김민호 대표와 같이 스테이 이고 운영하고 있는 박상연입니다. 이 공간은 저희 할아버지 때부터 60년 넘게 이어져 온 집이고요. 신풍동 토박이로 나고 자라 계속해서 이 동네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 공간을 계속해서 지켜나갈 계획이에요.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박상연: 저는 인문학, 미술사, 사회학을 공부했었고 원래는 사업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집을 임대로 내놨었는데 관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저희 가족에게는 이 집의 의미가 정말 특별하기 때문에 잘 보존하고 싶었어요. 하루는 엄마가 “이 집을 활용해서 가족들이 운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보자”라고 이야기하셔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에 민호 씨가 먼저 행궁동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어서 동네 분위기나 가능성을 물어보러 갔다가 인연이 됐고, 친구로 지내다가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이 공간이 처음부터 스테이 이고로 운영된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박상연: 네, 처음에는 ‘슬리핑 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게스트하우스 겸 식당으로 운영했어요. 도미토리 두 개 방이랑 단독룸 하나로 최대 10명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 형태였죠. 근데 낮에는 식당 일, 밤에는 손님 챙기는 일이 이어지니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손님들이랑 얘기 나누는 건 너무 재밌었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서 2년 정도 후에 게스트하우스는 정리하고 식당으로만 본격적으로 운영했는데요. 당시에 제가 가장 자신 있던 메뉴가 샌드위치였어요. 샌드위치를 주 메뉴로 파스타, 그라탕, 수프 같은 메뉴로 점점 늘려가면서 가정식 레스토랑으로 발전했죠.
식당으로 운영하던 공간을 스테이 이고로 전환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박상연: 식당을 7~8년 정도 하다 보니 몸이 너무 힘들어졌어요. 서비스업 자체는 육체노동이 맞더라고요. 자금관리나 재료비 계산 같은 것도 처음엔 정말 서툴렀고요. 코로나 시기에는 손님이 끊기면서 유지조차 어려웠고 저희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어요.
그때 남편이 숙박업을 다시 해보자는 제안을 줬어요. 사실 처음엔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해온 걸 다 버리는 기분이 들면서 허무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새로운 바람이 필요했던 시기였죠.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제안해 주니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이 선택이 저한테는 치유가 되는 시간이었어요. 다시 에너지를 얻고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1년 반 정도 즐겁게 운영하고 있어요.
김민호: 저도 마찬가지로 많이 안 좋아지면서 이대로 식당 일은 무리겠다 싶었어요. 숙박업은 예전에 했던 일이기도 하고, 지금은 스테이 문화가 훨씬 프라이빗해진 느낌이잖아요. 그래서 육체적 노동 강도도 예전보다는 덜 할 거 같았어요. 결국 3~5개월 정도 고민하다가 전환을 결심했고 지금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두 분이 손님들께 자주 하는 말이 있나요?
박상연: “걱정 말고 편하게 오세요”라고 자주 말씀드려요. 예약 전에 이것저것 물어보실 때도 그냥 오시라고 해요. 정말 오시면 저희가 다 해드리고요.(웃음)
최근 케이팝이나 드라마 때문에 수원을 찾는 분들이 많아졌지만, 화성의 역사적 의미・ 팔달산의 풍경・수원의 여유로움 같은 걸 소개해 드리면 “생각보다 훨씬 살기 좋고 평화롭다”라고 하시면서 돌아가세요.
손님들하고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세요.
박상연: 미국에서 혼자 여행 오신 페이트라는 분이 열흘 정도 머무셨는데, 이야기하다 보면 가정사나 고민도 나누게 됐어요. 나중에는 공방에서 고양이 도안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 주고 가셨어요. 프랑스에서 오신 게스트 분이 반년 만에 다시 오신 적도 있고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정말 많아요.
김민호: 저는 손님들과 이야기 나눴던 순간들이 기억나는 게 많아요. 한 번은 유럽에서 오신 커플이 있었는데요. 수원에서 여행을 마치고 다른 지역에 가신다고 하셔서 기차역샌딩을 약속해 드렸죠. 그런데 숙소 앞에 차가 그대로 있어서 박상연 대표에게 전화해 보니 카페에서 수다 떨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급하게 달려서 KTX 태워 보낸 적도 있어요. 그러다 그분들이 나중에 결혼한다고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이런 사건들이 있으면 멘탈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오히려 마무리만 잘 되면 다 추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두 분이 생각하는 행궁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박상연: 저한테 행궁동은 집이에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지켜봐 온 동네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 있어요. 이 공간에서도 가족들이 TV 보며 과일 깎아 먹던 자리, 아이들 노래자랑하던 자리, 오래된 나무들이 자란 모습까지 전부 추억이죠.
그래서 이 집을 잘 관리하고 손질하면서 오래오래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서울에서 지낼 때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달라졌어요. 서울의 자극적인 매력도 좋지만 수원은 뿌리와 유대감이 남아 있는 도시라서 여기서 친구도 만들고 더 안정감 있게 살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같아요.
김민호: 저는 스테이 이고를 방문해 주시는 게스트분들께 행궁동으로 이사 오라고 추천하는데요. 여행 오시는 분들도 살기에 좋은 동네라고 느끼고 가셨으면 해요.
행궁동은 화성 전체 안을 행궁동이라고 부르는데, 화서문부터 장안문까지의 상권만 보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근데 여긴 수원시에서 제일 큰 도서관도 가깝고, 대형 병원도 두세 개나 있고, 팔달산 산책로, 시립미술관, 시장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에 다 있어요. 살기에 정말 좋죠. 여행지에서 살기 좋은 동네라는 걸 경험해 보긴 쉽지 않은데, 저희는 그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행궁동 주민으로서 지역에서 하시는 활동이 있다면요?
박상연: 최근에는 ‘수월레’라는 모임을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절기에 맞춰서 화성을 한 바퀴 도는 거예요. 그냥 걷는 게 아니라 한복을 입고, 등불을 들고, 민요도 부르면서 동네를 같이 돌아요.
이게 동네 상권이나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함께 동네를 다시 보고 공감대를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해서 시작했어요. 비가 와도 한 20명 넘게 나와 주시더라고요.
김민호: 상업적으로 활성화된 동네라고 해도 주민 커뮤니티가 살아있어야 지속 가능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는 이걸 상업적으로 활성화하려는 게 아니라 주민으로서 동네를 즐기고 유지하고 싶어서 참여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김민호: 숙박업은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손님 수가 정해져 있어서 매출 목표보다는 루틴을 지키는 게 제일 큰 목표예요. 화장실 청소할 때 물기까지 닦는 루틴이라든가, 손님을 맞이할 때의 자세 같은 걸 처음 마음처럼 유지하고 싶어요.
그리고 박상연 대표가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서, 앞으로는 외국인 대상 한식 클래스나 투어 같은 것도 기획 중이에요. 예를 들어 김밥 클래스를 하면서 한국 식문화를 소개하거나, 행궁동 투어를 안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상연: 저는 꿈이 특별하지 않아요. 그냥 이 집에서 오래오래 잘 살고 싶어요. 그리고 손님들에게도 너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안정감을 드리고 싶어요. 이 공간에서 가족의 기억을 나누듯이 손님들이 소소한 편안함을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